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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다시만났던 한국과거 2022. 1. 11. 02:13
2000년에 떠나서 2009년 2월, 떠난 지 9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아니 고국에.
마음이 아리듯 행복했다. 그 땅을 밟는것이 그토록 감동을 주게 될지 몰랐다. 감동이었다. 눈물이었다.
또 수년만에 만난 부모님은 매번 볼때마다 너무 심하게 늙으셨다. 그 주름 하나하나가, 휑해진 머리숱이 내 심장을 떨어뜨린다. 쿵 소리가 나도록 떨어뜨렸다. 사랑합니다. 보고싶었습니다. 진심을 담은 말 몇 마디는 눈물의 두려움 때문에 목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눈물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탁하고 거무스름한 공기, 햇빛을 다 가려버린 빌딩들, 현기증나는 간판들. 모든 것이 새로우면서도 낯이 익었다. 변했어도 고향은 고향이었다. 더러워진 공기 들이마시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혼자 웃으며 걸었다.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잡하고 사람 냄새 가득한 서울, 내가 그리워했던 딱 바로 그것이었다.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생각했다. 일년중 350일이 화창하고 더운 캘리포니아, 차를 타고 20분을 가야 나오는 가게들, 작은 마당과 강아지와 방 세 개의 집에 한없이 충실한, 담장 밖을 좀처럼 보려고 하지 않는, 스타일도 치열함도 찾아보기 힘든, 여유로운 미국 사람들에 둘러싸인 서울 토박이의 답답함을. 더 큰 세상이 보고 싶어서 도망 나왔는데 나온 곳은 너무 커서 광활한 우주 같았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 멀리에 있어 나에게 말을 건네질 않고, 심지어 내가 내뱉은 말도 들리지 않는 너무나 조용한 진공상태 같았다. 다시 돌아가기엔 이미 욕심껏 손에 가득 쥔 것이 많아서 그저 내 배를 채우고 싶어서 늦었다고 생각했다.
대도시 서울. 밑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한숨소리, 미간의 주름. 조금 더 가진사람들의 '다행이다' 중얼거림이 들릴듯한 위태로운 여유.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며 장사하고 사기를 치는 무리들, 다 알면서 가격을 흥정하는 시장 사람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도 더 빨리 가려 뛰는 사람들, 이른 아침이면 깨끗한 얼굴로 일터를 향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집 앞에 즐비한 가게들, 약국들, 은행들, 병원들, 그리고 끝도 없는 음식점들. 예약 없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모든 건 너무 빠르고 그러면서 친절하다.
참았던 눈물은 고국을 떠나려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결국 터지고 말았다. 구름 없이 맑은 인천에서 하늘로 오르는 비행기에서는 창밖으로 서울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었다. 한강을 따라서 구석구석의 추억을 되짚었다. 남산에 얽힌 추억. 남산 바로 밑에 한남동에서 평생을 기억해도 다 기억 못 할 그 많은 추억들과 한강. 강원도로 접어들자 스키장이 보였다. 그리고 한겨울에도 초록빛 산들을 지나 동해가 보이고 그리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그것은 과연 잠시뿐인 달콤한 환상. 내가 가지 못하도록 저 공중에 떠있는 파스텔 빛깔의 환상. 쳐다만 보고 가슴앓이만 해야 하는 환상.
저기 떠있는 파스텔 빛깔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도 그랬겠지만 언제 내려오게 될지 알지 못한채로, 누군가는 아무 생각없이 즐겁고 누군가는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루고 있겠지. 환상이 길어지면 현실인듯 착각도 하고 착각 속에서 죽어가기도 하겠지. 달콤하게. 그것은 행복할까?
그 속에 살 때는 몰랐었다. 다시 돌아가면 행복할까. 지금의 이 생활도 여기를 떠나고야 좋았다고 말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