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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프란시스코 8년 생활 정리 - 요약
    여행 2022. 1. 12. 04:18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을 살았던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회고.

    그 전에는 10년이 넘게 엘에이에 살았다. 2012-13년은 개인적으로 이혼과 가족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해였고 무엇보다 일에 매달려 일로 감정을 해소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잘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서 지금 돌이켜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질질 짰던 것 치고는 아주 치열하게 살았다. 일하고 매일 운동하고 그러면서 집에 있으면 당장에 죽을 것처럼 밖으로 어떻게 해서든 나가 남녀노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어느 날 운이 좋아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회사에 갑자기 채용이 성사되었다. 당시에 내 나이는 만 37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미국에서는 동양인의 나이를 짐작을 못하기 때문에, 나는 20대 틈에 끼어 일하고 놀고먹고 마셨다.

     


    1. 환경

    내가 살아본 도시중 최고다. 어딜 가도 짧지만 기묘한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건물들 또는 현대적이면서 우아한 고층 빌딩이 있다. 미술가들의 활동도 왕성하고 대단한 미술관과 박물관들 그리고 음악 콘서트가 있다. 음알못인 내가 처음으로 비욘세 콘서트를 보고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어딜 가도 아름다운 경치의 바다는 물리도록 볼 수 있다. 금요일 토요일의 밤이 되면 싱글 남녀들의 파티가 여기저기서 넘쳐난다. 사람들을 잘 몰라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혼자 구경하거나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돌아다닐 수 있다. 클럽과 바가 즐비하고 술들을 많이 마신다. 각종 모임이 많은데 주로 서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네트워킹 및 정보 교환을 한다. (코로나 이전)

     

    회의하다 말고 쌍무지개 사진찍는 중

     

    수퍼볼 이벤트에서 무슨 콘서트였던것 같다. 사람 많아서 사진만 찍고 집에 와버렸다.


    2. 물가

    내가 살아본 도시중 최악이다. 요가도 할 수 없는 작은 스튜디오를 한달에 2천5백 불을 내고 살아야 한다. 그나마 그게 제일 싼 곳이었다. 집에서 요가라도 하고 싶다면 한 달에 3천 불 이상을 내야 살 수 있다. 물론 한 달에 300불가량 하는 주차료는 별도이다. 친구랑 저녁 한 끼에 와인을 마시면 평균 각자 70불을 냈다. 대단한 식당도 아닌데. 그나마 와인을 한잔 마셨을 때 그렇다. 2차로 바에 가서 술을 두어 잔 더 마시면 하룻밤에 각자 200불 정도를 썼다. 서울 청담동 물가와 비슷한 듯하다. 정말 작정하지 않으면 돈을 모으기가 힘들다.

    3. 사람들

    IT 회사들이 몰리면서 20후반에서 40 초반의 연령대에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있고 결혼해서 아이가 있거나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근교로 옮기기 때문에 찾아보기가 힘들다. 엘에이와 비교하니 한국사람 찾기가 좀 힘들고 중국사람과 인도 사람은 넘쳐났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아주 많다 보니 남성이 압도적으로 여성보다 많다. 즉, 30대 남자들이 대다수인 듯 보인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업계 종사자들이라서 지하철(BART)에서 만난 사람과 우버나 옐프의 사용자 경험에 대해 30분 동안의 토론이 가능했던 유일한 도시이다. 어딜 가나 코딩, 데이터, 유저 인터페이스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성향은 대부분 공부 많이 한 사람들 답게 온순하며 예의 바르지만 개인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무척 부지런하고 빠르다. 스타트업 성공한 31살의 억만장자, 한화로 연봉 3억을 버는 대기업 개발자부터 식당 서버까지 다양한 수입의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오픈마인드라서 딱히 사람을 가리지는 않는다. 일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학벌과 연봉을 내세워 으스대지만 그렇게 교만한 사람들은 꽤 드물다.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을 보는 게 더 드물 정도로 운동들을 많이 한다. 느긋하고 배 나온 사람들 많았던 엘에이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4. 맛집

    이렇다할 K town 이 발달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최고다. 한 끼에 300불+ 하는 미쉘린 3 스타 식당도 있고 Tenderloin이라는 묘한 이름의 동네를 가면 싸고 맛있는 street food 스타일의 음식점도 많다. 다만 이 텐더로인이라는 동네에는 노숙자와 마약중독자들이 대거 살고 있다. 물론 길거리에. 길거리에서 팔에 주사 놓는 노숙자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 일본에서 직송으로 생선을 매일 들여오는 일식집들이 오마카세 전문점을 포함하여 몇 군데 있고 맛이 훌륭하지만 많이 비싸다. 한 오마카세는 일인에 200불 안팎이었는데 다 먹고 배가 고파서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건 맛보는 것이고 오마카세 끝나고 맛있었던 것을 추가로 주문을 해서 먹는 걸 알았다. 배부를 때까지 먹으면 인당 400불은 나왔을 것 같다. 코로나 이후에 계속 운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홍콩 쪽에서는 꽤나 이름 있는 Crystal Jade Jiang Nan 이 거창하고 럭셔리하게 들어왔으나 잘 안됐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중국인들이 도시 면적 대비 아주 많이 살기 때문에 아무리 이름난 프랜차이즈라도 로컬의 본토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토박이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로컬 중국식당 중에 단연 최고는 R&G 였다. 나파가 가까운 만큼 와인도 많이 마셨다.

     


    5. 술집

    술집은 뉴욕에 비하면 약할지라도 많기도 많고 제대로된 칵테일과 위스키를 파는 곳이 많다. 분위기 또한 좋은 곳이 많다. 20-30대 여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바는 Local Edition과 Novela 였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곳은 83 Proof 였고, 1900년대 초반 금주령이 내렸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와 똑같이 운영하는 - SpeakEasy라고 하는데 간판도 없고 암호를 말해야 들어갈 수 있다 - 곳도 있다. https://www.the500hiddensecrets.com/united-states/san-francisco/drink/secret-speakeasy-bars 샌프란시스코의 젊은이들은 참 술을 많이들 마셨는데, 마리화나 합법화가 된 몇년 전부터는 내가 아는 사람 10명 중 8명이 마리화나를 달고 산다.

     

    5 secret speakeasy bars  in San Francisco

    These speakeasy bars in San Francisco are worth looking for.

    www.the500hiddensecrets.com

     



    6. 클럽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클럽 또는 나이트를 마지막으로 갔던 때가 1998-9년 대라고 하지만 그때 강남이나 홍대 클럽/나이트들이 샌프란시스코의 2015년을 대표하는 클럽들에 비하면 한 오십 배 정도는 세련됐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쪽에서는 뒤 쳐 저 있다. 그런데도 잘 나가는 클럽들은 외로운 싱글들로 금 토요일 밤에는 미어터졌다. 2015년 정도에는 Origin (지금은 이름이 바뀐 듯)과 Temple 이 대표적이었고 작은 클럽들이 많았다. Origin 은 재팬타운에 있던 만큼 동양인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Temple 은 힙합 전용 지하층이 있어서 인기도 많고 신선했는데 난 워낙에 힙합을 몰라서 그냥 무슨 창고에 음악 크게 틀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럴 바엔 분위기 좋은 바를 더 선호해서 클럽을 자주 가지 않았다.

    7. 패션 (Fashion)

    젊고 돈 많은 사람들 몰려있는것 치고는 참 구리다. 돈을 많이 벌수록 구리다. 잡스와 저커버그가 선도한 청바지, 티셔츠, 후디 패션이 전부인 사람이 과반수이다. 패션은 정말 별 볼일 없다. 내가 어쩌다 차려입고 나가면 어색한 기분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외모에 신경을 안 쓴다.

     

    금요일 밤에 예전 회사 동료들의 패션. 그나마 티셔츠와 후디는 회사에서 나눠주거나 컨퍼런스가서 받아온 것들. 패션에 돈을 안쓰는데 이사람들 모두 돈을 내 기준에서는 헉소리나게 많이 번다는게 특징이다.


    8. 기타

    좁은 땅에 대기업들이 밀집해있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는 차가 서울 수준으로 막힌다. 나보다 잘나고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을 쳐다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무척 괴로울 수 있다. (저커버그가 근처에 산다.) 현재에 만족하고 자연을 즐겨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나도 1년간 자존감이 낮아져 우울증에 시달렸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가 보니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만 힘든 거 아니구나라고 위로를 조금 받았다.

    9. 떠난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코비드이다.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라도 (이미 수년간 누릴 것 다 누려서) 더 이상 그 많은 집세를 내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10. 다시 돌아갈까?

    아니,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놀러는 갈 수 있지만 다시 거기서 살고 싶지는 않다. 정신적으로 참 힘들고 상대적 박탈감의 끝판왕을 경험했다. 욕심이 없이 마음을 비운 사람이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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